연간 예산 4조 원 vs 지자체 요구 650조 원…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딜레마
지자체의 무분별한 철도 건설 요구가 국가 재정 건전성을 위협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제한된 예산 안에서 현실적인 우선순위를 설정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국토교통부가 추진 중인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수립 과정이 지자체들의 과도한 요구로 인해 진통을 겪고 있다. 현재 국토부가 확보한 연간 철도 투자 예산은 약 4조 원 규모이나, 각 지방자치단체가 건의한 철도 사업 총사업비 합계는 650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가용 예산의 160배에 달하는 수치로, 사실상 모든 사업의 동시 추진이 불가능함을 시사한다. 철도망 구축은 장기간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국책 사업인 만큼, 지자체의 무분별한 요구가 국가 재정 부담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철도 건설은 지역 경제 활성화와 교통 편의성 개선이라는 명분하에 지자체장들이 선호하는 핵심 공약이다. 이로 인해 경제적 타당성(B/C)이 확보되지 않은 노선까지 무차별적으로 건의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과거 선례를 볼 때, 예비타당성 조사 단계에서 낮은 경제성으로 탈락하는 사업이 부지기수임에도 불구하고 지자체들은 정치적 요구를 앞세워 예산 확보를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정책 결정 과정의 효율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꼭 필요한 국가 간선망 구축 사업의 적기 추진마저 늦추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 내부에서는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한 엄격한 심사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토부는 기존의 경제성 중심 평가에서 나아가 지역 균형 발전과 정책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되, 지자체의 재정 분담 원칙을 보다 명확히 할 방침이다. 국책 사업이라는 명목하에 국가 예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지자체가 책임감을 가지고 사업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체계가 정립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특히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 철도 건설 후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적자 문제에 대한 지자체의 자구책 마련도 요구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5차 계획이 과거처럼 모든 요구를 수용하는 '백화점식 나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가 전체의 교통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거점 도시 연결 위주의 노선을 선별하고, 중복 투자 가능성을 배제하는 등 과감한 구조조정이 병행되어야 한다. 650조 원이라는 방대한 요구액 속에서 실질적인 국가 경쟁력 향상에 기여할 노선을 가려내는 국토교통부의 선별적 정책 의지가 향후 철도망 계획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재정 건전성 확보와 지역 인프라 확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정부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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